요즘은 눈과 귀가 함께 호강해야 한다.
걸그룹 무대를 떠올릴 때, 예전에는 멜로디나 후렴구가 먼저 기억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번 안무 뭐야?”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래보다 먼저 안무 영상이 돌아다니고, 직캠이 퍼지고, 챌린지가 생긴다. 무대는 더 이상 노래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움직임으로 한 번 더 설득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음악 방송 무대가 유튜브와 SNS로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화면 안에서 한 번에 눈을 잡아끄는 동작의 중요성이 점점 커졌다. 예전처럼 전체를 차분히 보는 무대가 아니라, 짧은 구간만 잘려서 반복 재생되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안무도 자연스럽게 “어디서 잘라도 한 번은 눈에 걸리는 포인트”를 가져야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는 안무가 곡의 일부라기보다는, 거의 같은 무게로 같이 기획된다. 어떤 경우에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안무 영상을 먼저 보고 곡을 다시 듣는 경우도 흔해졌다. 그만큼 움직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 안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곡은 안무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칼군무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한동안 걸그룹 안무를 대표하던 키워드는 단연 “칼군무”였다. 여러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마치 한 사람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그림. 이건 지금 봐도 여전히 대단한 장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방식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다들 너무 잘 맞추다 보니, “잘한다” 이상의 인상을 주기가 점점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체 합보다, 각 멤버의 캐릭터가 더 잘 보이는 쪽으로 안무가 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같은 동작을 해도, 멤버마다 약간씩 다른 느낌이 살아 있고, 파트마다 중심이 바뀌면서 시선이 이동하는 구조다. 이렇게 하면 무대가 조금 더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직캠으로 봤을 때도 각자 볼거리가 생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합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인 정리는 여전히 필수다. 다만, 예전처럼 “완벽하게 맞춘다”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잘 맞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보이게 한다” 쪽으로 기준이 이동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이 변화는 안무가들이 동작을 짤 때도, 무대를 구성할 때도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의 힘
요즘 안무를 보면, 전체는 꽤 복잡한데, 이상하게도 후렴이나 특정 구간에는 유난히 따라 하기 쉬운 동작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짧은 영상 플랫폼이 중심이 되면서, “누가 따라 해볼 수 있는 포인트”를 하나쯤은 꼭 만들어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동작 하나가 살아나면, 노래의 운명도 꽤 달라진다. 팬이 아닌 사람도 그 부분만 보고 흉내 내다가 곡을 알게 되고, 그게 다시 원곡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생긴다. 예전에는 방송 무대가 홍보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 짧은 동작 하나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안무 회의에서는 “이 동작, 일반 사람도 할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가 진지하게 오간다. 너무 어렵기만 하면 보기에는 멋있어도, 퍼지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쉬우면 또 재미가 없다. 이 사이 어딘가를 찾는 게 요즘 안무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제 안무는 멤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까지 같이 끌어들이는 장치가 되었다.
체력과 난이도,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
안무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그 부담은 그대로 멤버들에게 돌아간다.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강한 동작을 소화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무대를 반복해야 한다. 연습할 때는 괜찮아 보여도, 활동이 몇 주만 이어져도 몸에 무리가 쌓인다.
그래서 요즘은 “멋있지만 오래 못 하는 안무”보다는, “조금 덜 화려해 보여도 끝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안무”를 고민하는 팀들도 많아졌다. 특히 라이브 무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일수록, 이 균형을 더 신경 쓰게 된다.
또 한 가지는 부상의 문제다. 무릎이나 허리, 발목은 한 번 다치면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안무가가 아무리 멋진 그림을 가져와도, 실제 멤버들 몸 상태에 맞게 수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대 위에서 보이는 안무는, 그렇게 여러 번 깎이고 다듬어진 결과물이다.
결국 안무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꽤 현실적인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건 결국 몇 초
수많은 안무를 거쳐 간 팀들을 떠올려 보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남는 건 항상 몇 개의 장면뿐이다. 어떤 팀의 특정 손동작, 어떤 팀의 특정 회전, 어떤 팀의 특정 포즈. 그 몇 초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안무를 만드는 사람들도, 결국은 “전체를 다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무대가 아무리 길어도, 사람들 기억에 남는 건 짧은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걸그룹 안무의 변화는, 더 복잡해지고, 더 세련되어진 동시에, 더 명확한 한 방을 요구받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이 흐름은,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노래가 시간을 타고 남듯이, 안무도 결국은 그 팀과 그 시대를 상징하는 몸짓으로 기억된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여전히 무대를 다시 찾아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