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하는 걸 넘어서, 하나의 생활이 되어버리는 과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K-POP 걸그룹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한 번은 팬덤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음악이나 무대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대부분 이 팬덤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팀은 컴백하면 항상 성적이 일정하게 나오고, 어떤 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이런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꾸준히 움직이는 팬덤이 있다. 흥미로운 건, 팬덤이라는 게 처음부터 그렇게 조직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냥 “이 그룹 노래가 좋다”, “이 멤버가 마음에 든다” 같은 아주 개인적인 호감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고,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콘텐츠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하나의 집단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은 팬덤이 단순히 응원만 하는 존재라고 보기도 어렵다. 앨범 성적, 음원 순위, 화제성, 심지어는 그 그룹의 이미지까지도 어느 정도는 팬덤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기획사 입장에서도, 팬덤은 그냥 “고마운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하나의 기반이 된다. 이 글에서는, K-POP 걸그룹 팬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어떤 팀의 팬덤은 오래 가고, 또 왜 어떤 팀의 팬덤은 쉽게 흩어지는지에 대해서, 최대한 현실적인 시선으로 천천히 풀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그냥 조용히 좋아한다.
대부분의 팬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다. 우연히 본 무대 영상 하나, 추천으로 뜬 노래 하나, 혹은 짧은 인터뷰 클립 하나가 계기가 된다. 그때는 그저 “괜찮네” 정도의 감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더 찾아보게 되고, 또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관심이 쌓인다. 처음에는 굳이 팬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노래를 듣고, 영상 몇 개 보는 정도다. 하지만 활동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소식을 챙겨보게 되고, 컴백 날짜를 기억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미 어느 정도는 그 그룹의 흐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이미 그 그룹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댓글, 커뮤니티 글, 짧은 후기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 “이번 무대 진짜 좋다”, “이번 노래 계속 생각난다” 같은 말들이 반복되면, 아직 깊이 빠지지 않은 사람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이렇게 개인적인 호감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집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같이 기다리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반응하는 구조로 바뀐다. 팬덤의 시작은 대부분 이런 아주 조용한 흐름에서 만들어진다.
팬덤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팬덤을 “열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로만 설명하려고 한다. 물론 그런 감정이 중심에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실제로 오래 유지되는 팬덤을 보면,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구조와 습관이 같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게 활동 주기에 맞춰 움직이는 패턴이다. 컴백이 다가오면 티저를 기다리고, 콘셉트 사진을 분석하고, 하이라이트 메들리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본다. 활동이 시작되면 음악 방송을 챙겨보고, 무대를 다시 보고, 직캠을 보고, 반응을 정리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생활 리듬처럼 굳어진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팬들 사이의 역할 분화다. 누군가는 자료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번역을 하고, 누군가는 일정표를 만들고, 누군가는 사진을 모아서 공유한다. 이게 처음부터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냥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가 생기면, 팬덤은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넘어서, 하나의 작은 공동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보가 돌고, 규칙이 생기고, 암묵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분위기에 익숙해질수록, 그 안에 머무르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물론 항상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의견이 갈릴 때도 있고, 방향성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팬덤 내부에서 분위기가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끝까지 남는 사람들은 또 남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구조가 단순한 취미 이상의 무언가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팬덤은 단순히 현재 활동만 보는 집단이 아니라, 그 그룹의 과거와 현재를 같이 정리하고 기억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예전 무대, 예전 인터뷰, 예전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다시 소환되고, 새로운 팬들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되면, 팬덤은 그 그룹의 일종의 기록 보관소 같은 역할도 하게 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팬덤이 그룹의 방향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점점 많아졌다는 점이다. 어떤 콘셉트가 특히 반응이 좋으면, 비슷한 방향이 한 번 더 나오기도 하고, 어떤 멤버의 인기가 눈에 띄게 올라가면, 그 멤버의 비중이 조금씩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게 팬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다. 이쯤 되면, 팬덤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그 그룹의 활동 환경 일부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팬덤은 시간을 같이 쌓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K-POP 걸그룹 팬덤을 오래 지켜보면, 결국 남는 건 순간적인 열정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 어떤 무대를 처음 봤을 때의 감정, 어떤 활동을 기다리면서 했던 이야기들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그룹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예전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그때 그 무대 기억나?”, “그 시절 진짜 정신없었지” 같은 말들이 나오는 이유도, 결국은 그 시간을 같이 지나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K-POP의 구조가 바뀌고, 유행이 바뀌고, 시스템이 달라져도, 팬덤이라는 형태 자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도, 좋아하는 대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쌓아간다는 구조 자체는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팬덤은, 어떤 그룹을 오래 좋아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꾸준하게 작동한다.